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언 일병 구하기 (문단 편집) == 해설 ==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기본적으로 라이언이 집에 돌아가기까지의 구출팀이 겪은 일을 1998년(작중 현재)의 늙은 라이언이 회상하는 구조지만, 실제로 라이언이 회상할 수 있는 부분은 구출팀과 만난 후뿐이다. 그 전까지 라이언은 구출팀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라이언의 회상이 오롯이 영화로 표현됐다고 이해하기 보단 주제 의식의 더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영화적 장치로서, '회상하는 구조'가 선택됐다 정도로만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구출팀 중 생존자가 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이 전역하기 전의 라이언에게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줬다고 가정하면 앞뒤가 맞을 수도 있다. 이 2명의 생사여부는 확실치 않다. 노르망디 전투 이후에도 제2레인저 대대는 프랑스의 브레스트 전투, [[휘르트겐 숲 전투]]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업햄이 속해 있던 제 29보병사단의 경우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사상률이 무려 200%가 넘었지만 업햄은 비전투병이었으니 무사히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이야기는 [[미 해군]]의 경순양함 USS 주노에 탑승한 [[수병]] [[설리번 5형제]]가 [[태평양 전쟁]] 때 과달카날 해전에서 USS 주노가 격침되면서 전부 전사해버린 비극에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 이전부터 [[미군]]에는 가족 관계인 장병들이 같은 함정에 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설리번 형제는 해군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특별히 허가를 받아 함께 복무한 사례.] 이 사건 이후로는 더더욱 철저히 지켜진다.[* 이 사건은 감독판에서 언급된다. 라이언 형제는 동반입대로 원래 29사단 같은 중대에서 복무했는데 설리반 형제 사건 이후 재배치 되었다고 한다. 짤린 이유는 밑에 라이언 일병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맷 데이먼의 애드립인 헛간 사건 때문에 동반 입대 설정이 붕괴되었기 때문. 다만 편집된 극장판에서도 사소하게 오류가 생기는데, 작중 라이언 형제의 어머니가 전사 통보를 받을 때 네 아들이 같은 부대의 군복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이 얼핏 보인다. --이상한 건 제임스 라이언이 공수부대로 재배치되었다는 건데, 공수부대는 철저히 지원제고 훈련때 퇴출당하면 다시 못 돌아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데 그쪽으로 재배치 되었다는거다.-- 하지만 재배치 될 때 공수부대로 희망해서 훈련을 무사히 통과하고 배치된 사례도 존재했으니 불가능한 설정은 아니다. [[아이리시맨]]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프랭크 쉬란도 헌병대 복무 중 [[진주만 공격]]이 벌어지고 전투부대로 배치받기 위해서 공수부대를 지원했다. 다만 쉬란은 부상으로 퇴출 후 일반 보병부대로 배치되었지만 기존 공수부대가 아니었던 타 병과나 부대에서는 공수부대에 재배치 받기 위한 지원은 가능했다. 어찌 되었건 극장판에서는 이 설정이 잘렸으니 상관은 없다.] 왜 극중에서 구출부대가 파견됐는가 하면, 라이언 일병(극중 또다른 주인공이자 제101공수사단 소속의 공수부대원)이 있던 D+7일 전후의 노르망디 지역은 산개된 공수부대 중 약 7~80%의 대원이 궤멸당하고, 생존한 부대원들마저 아직 모두 모이지 못하여 계속적으로 희생당하는 극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다면 어디 있는 건지 제대로 된 확인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구출 부대라는 것이 편성되어 파견된 것.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즉 오버로드 작전의 성공은 D+30일에도 성공을 겨우 확신하냐 마냐 하는 수준이었다. 오버로드 작전 자체가 [[파리(프랑스)|파리]] 수복까지가 작전 계획인지라 상륙한 게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중 라이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2차 대전 당시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501연대 3대대에서 복무한 병장 프레더릭 닐랜드(Frederick Niland)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짧게 언급된다. 이지 중대의 워렌 먹과 도널드 멀라키와는 입대 전부터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영화속 라이언과 비슷하게 이들 네 형제들은 설리번 형제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각각 다른 부대에 흩어져 복무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형제 셋이 태평양 전선 뉴기니와 노르망디의 유타와 오마하에서 전부 죽거나 실종되었다.[* [[뉴기니]]에서 실종된 형은 나중에 [[일본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되면서 생존이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 남은 닐랜드는 본토로 귀국 조치되었다고 한다. 영화와 달리 감동적인 구출작전 같은 것은 없었다. 상부에서 귀국 조치를 명령하자 전우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버텨 아버지까지 설득하러 와야 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3부에 나오는 카랑탕 지역에서 열심히 싸우던 중에 닐랜드가 속한 501연대의 군종 신부가 닐랜드의 집으로 이들 형제의 사연을 편지로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귀국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